|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히 쌓인 눈을 밟는다. 뿌드득뿌드득. 고요한 공간에 울려퍼지는 잡음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빙긋 미소를 띄운다. 눈은 웃음에 대한 고발로서 비명과 함께 발자국을 토해낸다. 토해낸 발자국은 점점 길어지고, 그 위엔 다시 하얗게 눈이 쌓여 흔적을 지워버린다. 누군가 저길 다시 밟기 전까진, 나의 범죄는 숨겨지겠지. 아니면 완전범죄로 남아 지저분한 눈덩어리가 햇살에 녹아내릴 때까지 그 흔적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처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신비하고 재밌는 일이다. 처음 학교를 간 일,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한 일, 처음으로 말문을 연 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간 대학교, 사랑하는 이의 손을 살그머니 쥐어보는 일, 첫키스의 짜릿함. 닫혀있는 방문을 열 때의 기대, 단단히 잠겨있는 문을 밀고 들어갈 때의 두근거림. 그 모든 것의 기분이 처음의 기분이다.
저기서 누군가 다가온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의 소중한 기분을 망쳐버리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이 조금씩 더 뚜렷해지고, 구분이 간다. 아아, 나의 학교 후배다. 만나는 것이 짜증은 아니지만, 지금의 기분에서는 방해로 느껴진다. 후배도 나를 인식하였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어쩔수 없는 웃는 낯으로 인사를 방해한다. 그 아이의 뒤에도 점점히 이어진 발자국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어디가세요?" "아니 그냥, 걷고 있었어" 사실 나온 이유가 뭐에 있으랴. 단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에 손대고 싶었을뿐. "넌?" 예의상 되묻고, "전 잠깐 나왔어요." 예의상 답나오고, 뻔하다. "그래 그럼 잘가~" "네~"
그리고 한 선배와 후배는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한다. 서로의 발자국을 거꾸로 추적해가면서. 서로의 흔적을 다시금 짓밟으면서. 무협지에서 흔히들 말하는, 답설무흔의 경지 따윈 개소리에 불과하기에. 둘다 질량과 무게를 갖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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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에 올렸던 글 그대로 따왔습니다.
그냥, 이 땐 참 행복했는데...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