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습관처럼 버튼을 꾹, 눌렀다. 0시 19분, 3월 16일, 금요일.
언제부터인지 염주와 함께 내 손목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손목시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상한 기계가 그의 역할을 대신한다.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손목만 쳐다보면 되던 시계를,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찔러대면서 봐야되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기술의 발전이란 말인가. 기술이 발전했으면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지, 더 불편하고 짜증나게 만들어놓고 무슨 발전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이는 건지. 아무데나 좋은 말 갖다붙이는 건 여전하다. 쳇. 이건 퇴보이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의 시발점은 아닐까? 이런 씨발, 별 거지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내 방에는 그 흔한 탁상시계나 벽걸이시계 하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버튼을 쿡, 내리찍는다. 0시 26분, 3월 16일, 금요일.
내일은 아침부터 수업이 있는데 - 아니, 날짜상으로는 오늘 - 아직도 안자고 이러고 있는 나를 한심스럽다는 듯이 빛을내며 바라보다, 픽 하고 화면이 나가버린다. 왠지 모르게 이 기계가 나를 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주(主)기능은 사용도 안되는 주제에, 부(附)기능으로 나를 우롱하다니, 미래에 기계가, 기술이 인간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아직은 내가 네 주인이란 말이다. 너를 때려부수는 것도, 전원을 꺼버리는 것도 다 내 자유의지에 따라 가능한데, 감히 나를 놀려? 아직은 내가 너의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자, 최고 통수권자라고!
또 나는 버튼을 찍, 긁어본다. 0시 31분, 3월 16일, 금요일.
이런, 배터리가 다 되간다는 경고음이 흘러나온다. 젠장, 나는 욕설을 지분거리면서 새 배터리를 갈아끼우고, 예전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어라, 이건 내가 아까 큰소리 쳤던 내용과 전혀 다른데, 이미 나는 이놈의 지배를 받고 있는걸까. 배고프다고 하면 밥주고, 어디 한번 부술 수 있으면 부숴보라는 거만한 태도로 내 눈앞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이놈. 근데 웃긴건 내가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젠장, 이건 정말 웃기는 최첨단 시계가 아닌가. 역시 기술이 발전한건가? 사람의 지능과 자유의지를 지배할 정도로. 갑작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나는 수십개의 부가기능과 세 개의 주요기능을 가진 이 시대 최고, 최악의 발명품을 움켜쥔다. 그리고는 벽으로 힘껏, 던져버린다. 이놈의 묘비명을 뭘로 지어줄까? 그렇지, 이게 좋겠다.
너 건방진 시계를 흉흉히 기리면서.
팍,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 시계를 다시 주워들었다. 고이 묻어주마, 물론 쉽게 썩을 몸은 아니시겠지만, 플라스틱과 리튬과 이온으로 돌아갈 너에게 최소한의 동정은 주마. 푸하하. 난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거렸고, 주워든 녀석의 버튼을 습관적으로 다시 꾹, 눌렀다.
0시 38분, 3월 16일, 금요일.
역시 최첨단 기기답게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하며 이녀석은 다시 한번 나를 비웃었다. "넌 날 없앨 수 없어. 이미 난 너의 일부분이자 너의 일상생활 한쪽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구." 그런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런 젠장맞을 녀석을 보았나. 이젠 화가 아니라 허탈감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럼 나는 아까 전력을 다해 집어던진게 아닌걸까. 나의 자유의지는? 나의 생각은? 전부 나만의 착오이자 오판이었던걸까.
꾹, 0시 41분, 3월 16일, 금요일.
나는 다시 한번 그 시계를 바라보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머리맡엔 알람을 맞춰놓은 나의 지배자를 고이 모셔놓고. |